을갤러리(김을수 대표)는 오는 2020년 6월 9일부터 7월 9일까지 홍명섭 개인전 <토폴로지컬 레벨(topological level)>을 개최한다. 이번 을 갤러리의 홍명섭 개인전은 을 갤러리와 류병학 독립큐레이터가 공동기획한 전시이다. 전시작품은 토폴로지컬 평면(de·veloping the circle) 5점과 토폴로지컬 조각(de·veloping the circle) 2점 그리고 토폴로지컬 설치(level casting ; becoming a floor) 1점이다. 8점 모두 2019년과 2020년에 작업된 신작이다. 평면 5점, 조각 2점 그리고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홍명섭의 토폴로지컬 평면 5점은 엠디에프(M.D.F)와 스테인리스 스틸판(stainless steel plate) 에 기하학적인 현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기하학적인 형상은 레이저 광선으로 그을린 것으로 마치 400자 원고지(squared manuscript paper)처럼 보인다. 홍명섭은 ‘원고 지’ 가운데 부분을 레이저로 절단(laser cutting)하여 비스듬히 기울여 놓았다. 따라서 관객이 일정한 규격을 가진 수평면들로 이루어진 ‘원고지’ 중앙을 보면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유클리드기하학에서 삼각형과 원, 이 둘은 완전히 별개의 도형이다. 그러나 위상기하학에서는 같은 종류의 도형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삼각형을 차츰 부풀려 변형해 가면 마침내 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상기하학 에서 원,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팔각형 등은 모두 같은 도형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위상기하학에서 각기둥, 각뿔, 원기둥, 원뿔, 구 등도 모두 같은 도형이 된다. 이를테면 위상 기하학에서 선분의 길이나 각도, 넓이, 부피 등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홍명섭이 말하는 ‘토폴로지컬한 상상과 사유’란 열린 상상과 사유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말하자면 탄성적(彈性的) 상상과 사유 말이다. 홍명섭은 원고지의 가운데를 절단해 사선 방향으로 놓아 관객에게 토폴로지컬한 상상과 사유를 하도록 만든다. 흥미롭게도 그의 작품은 ‘누구나 할 수 있기도 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어느 면에서 몰개성적이고 무기교적 작업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은 일종의 ‘아트리스 아트 (artless art)’라고 말이다.
홍명섭의 토폴로지컬 조각 2점은 각각 정육면체와 원형의 ‘기괴한’ 변형체들이다. 홍명섭은 그 조각들을 ‘메타-큐브(meta-cube)’로 명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메타-스퀘어/메타 -큐브(meta-square/meta-cube)는 70년대 초 학창시절부터 나타난 비시대성과 탈인간적 관심사로 엮긴 ‘스퀘어 오퍼레이션’ 시리즈들(데뷰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시기적으로는 오래된 관심사이지만 내 작업들이 그렇듯, 언제든지 ‘시대착오적’으로 다른 시간대로 역류하면 새로 솟구쳐 오늘 나의 작업으로 되/살아난다. 그러니 내 작업엔 과거란 없다. 단지 ‘지금과 여기’ 를 형성시키고 지금의 차원으로 개입해 가는 새로운 기억이 있을 뿐이다.”
을 갤러리 2전시장에 홍명섭은 거대한 전시장 바닥 형태를 따라 단 한 점의 설치작품을 설 치해 놓았다. 그는 거대한 전시장 바닥에 500개의 리놀륨판들(linoleum plates)과 스테인리 스 스틸 막대들(stainless steel sticks)로 가로 5미터와 세로 5미터 10센티에 달하는 일종의 ‘바닥’을 만들어 놓았다. 홍명섭은 이 작품을 <레벨 캐스팅(level casting)>이라고 명명하고, 부제로 ‘바닥이 되다(becoming a floor)’라고 붙였다. 따라서 관객은 그의 작품을 발로 밟을 수 있다.
홍명섭은 ‘그림자 없는(shadowless)’ 조각에 주목한다. 혹자는 전시장 바닥에 1cm 정 도밖에 되지 않는 리놀륨판들과 스테인리스 스틸 막대들로 설치한 홍명섭의 일명 ‘레벨-캐 스팅’을 ‘조각(sculpture)’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점에 관해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 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물론 홍명섭의 ‘그림자 없는’ 조각이 단지 시각적인 측면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자 없는’ 조각은 전통적인 조각에 문제 제기를 서서히 진행하는 조각(creeping pieces), 즉 일종의 ‘토폴로지컬 조각(topological sculpture)’이라는 것을 깨닫 게 될 것이다.”
홍명섭은 전시장 “여기서 저기로,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조립하는 반복”을 해오고 있다. 그는 “같은 반복의 조립과 해체”를 반복한다. 물론 그의 반복은 같은 반복이 아니라 장소의 차이로 인한 ‘차이로서의 반복’이다. 그것은 “수평이라는 실제와 관념이 물질과 운동으로 지 속(기억)되고 현현되는 반복.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반복”이다. 따라서 그는 “‘자리 이동’ 이 야말로 나의 작업에서 설치 개념의 실천인 것”이라고 진술한 것이다.
홍명섭의 설치작품들은 전시하는 장소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연출되었다. 이를테면 그의 설 치작품들은 예술가의 창작 과정이 행해지는 사적 공간인 스튜디오가 아닌 작품이 설치되는 전시공간인 일명 ‘포스트-스튜디오(post-studio)’ 작업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그의 설치작품들 은 일정 기간 전시된 후 전시가 끝나면 해체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번 을 갤러리에 전시된 홍명섭의 설치작품 <레벨 캐스팅> 역시 일정 기간 전시된 후 해체될 것이다.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는 “홍명섭의 작품세계를 가로지르는 3가지 개념들(shadowless, artless, mindless)은 서로를 넘나들고 있다”면서, 그의 3가지 개념들은 흥미롭게도 “전통적인 미술의 고정된 개념을 해체시킨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홍명섭의 3가지 개념을 “일종의 ‘메 타-개념(meta-concept)’”이라고 부른다. 덧붙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근대적인 예 술가가 형이상학적 예술개념으로 사기 친 ‘사기꾼’이라면, 홍명섭은 형이상학적 ‘사기꾼’을 사기 치는 ‘메타-사기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그는 형이상학적 예술의 적수(敵手) 로 등장하여 근대예술을 해체시킨다"라고 작가에 대해 말했다.
홍명섭(1948년생) 작가는 평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조소 전공으로 학사, 석사 학위 를 취득했다. 그는 1990년 제44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에 초대받으면서 국내외 미술계에 주목을 받는다. 홍명섭은 1995년 46회 베니스 비엔날레 기획전 ASIANA, 독일 슈투트가르트 펠바하 ‘95국제 소형조각 트리엔날레, 폴란드 바르샤바의 아르스 폴로나 갤러리 2인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전(‘95 한국현대미술: 질, 양, 감), 1997년 독일 퀠른 ’Pair‘, 독일 드레벤 ’국제 쿤스트 포름‘, ‘97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2000년 미디어 시티-서울, 부산 국제 아트페스티발(picaf), 2003년 이탈리아 사보나 비엔날레(biennale of ceramics in contemporary art), 2005년 안양공공예 술프로젝트, 2006년 스위스 빌 국제전(Fluid Artcanal International), 2007년 독일 대사우 ’rainbow mapping project‘, 2008년 부산비엔날레, 오스트리아 그라츠 ESC갤러리, 2009년 인천 국제 디지털아트페스티벌, 2012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Kunstbad ’FLOW‘, 세르비아 노 비사드문화예술센터, 2016년 부산비엔날레 등 국내외 국제전에 초대받았다.
그는 한성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그리고 청주시립미술관의 관장으로 재직했으며, 미술비평가 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작가에 대한 다수의 비평문과 연구 논문 그리고 에세이 또한 단 행본을 쓰기도 했다. 그의 저서로는 <전환기의 현대미술<(솔출판사, 1991), <미술과 비평 사이>(솔출판사, 1995), <현대미술의 기초개념>(강성원 편집, 엔소로지, 1995), <현대철학의 예술적 사용>(아트북스, 2017)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등 국공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인 호암미술관 그리고 개인 컬렉터들이 소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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