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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프리뷰

[전시] 2023 기억공작소 차규선展 ' 風·景 - Scenery'

by 사각아트웹진 2023.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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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기억공작소Ⅰ 차규선展이 '風·景 - Scenery'이라는 주제로 2023년 2월8일부터 4월 16일까지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에서 열린다.

와산 / 청송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안쪽 틈으로 보이는 높이 4m의 작품이 압도적인 공간감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며 시선을 끌고 있다. 그러나 관람객이 전시장 내부로 들어서 전체를 둘러보면 큰 작품 외 나머지 3점으로 덩그러니 전시실을 구성해 어떻게 보면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찬찬히 하나씩 작품을 살펴보면 익숙한 이미지 속에 잔잔하게 밀려드는 미묘한 감정들이 묻어나는 조형 언어들로 구성되어 각기 다른 이야기로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눈 날리는 산속의 풍경, 어둠의 끝을 부여잡고 있는 산등성이의 실루엣, 쉽게 밟고 지나칠 수 있는 흙바닥 등 작가가 머물고 품어낸 작고 소박한 자연이지만 모든 사람이 한 번쯤 스쳐 지나가고 바라볼 법한 이미지를 일대일로 마주 설 수 있도록 하였다. 대상에 집착하지 않는 작가의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이 부차적인 시선의 방해 없이 화면을 응시하도록 해 그 속에서 나타나는 개개인의 경험 속 잔상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구조인 것이다. 익숙한 공간속에서 기억 너머 시공간까지 자연과 신비한 교감을 경험케 함으로 증폭된 시각적 유희를 안겨줄 수 있는 전시로 관람객이 기억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風景 / 와산

 

작가는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변화될 것 같지만 몸속에 내포된 유전자처럼 잘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는 태어난 환경과 유년 시절 성장 과정이 사람마다 다른 유전자처럼 예술작품 속에 전사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작가가 자연의 법칙을 마주하는 자세를 엿보게 하는 말이다.

작가는 인위적이지 않고 유동적으로 자연의 변화를 감지하며 몸속에 체득하려 한다. 캔버스라는 사각의 틀을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 범위 안에서 다양한 재료의 실험으로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고 신체의 자유로움을 잃지 않도록 어떤 형식으로 자신을 구속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작가는 1995년 유화를 주재료로 한 사실적 풍경을 시작으로 한 해도 거른 적 없이 개인전을 개최하며 끊임없이 재료를 실험한 결과 분청사기의 표면을 회화의 영역으로 가져온 ‘분청회화’라는 독특한 기법을 완성해 낸다. 보통의 작가라면 자신만의 화풍이 구축되면 그 틀 속에 안주하며 반복적인 작업을 할 법도 한데, 작가는 다시 박차고 벌판으로 나와 새로운 소재와 방법을 찾는데 몰두한다. 어떤 방법적, 형식적인 틀에 몸을 얽매이며 자신의 붓놀림에 제약을 두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는 유전자를 지닌 작가이지만,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도 극도로 경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을 어떤 부류로 규정짓기를 원하지 않는다. 단지, 관람객에게 그림은 그림이란 형태로 다가가야 하며, 극단적 왜곡이나 과장된 표현으로 접근성이 저해되지 않게 하며, 작가의 내면적 감정의 표출이지만 관람객의 인식과 경험에 괴리가 없게 해야 미술이 가지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음미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졌다.

 
풍경

한마디로 자연을 바라볼 때의 관점, 경험, 시간, 감정, 날씨나 환경까지 모든 것들과 그곳에 서 있는 우연과 그곳에 갈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 겹쳐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이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차규선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일상 속 자연에서 순간 느껴지는 감정들을 예리하게 수용하고 채집해 화면을 구조적인 관점으로 표현하는 탁월한 감각적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인간 자체가 자연이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부산물이면서 자연을 거슬러는 것이 인간이고 어떻게 보면 인간은 가증스러운 존재일는지도 모른다. 내가 표현하는 자연은 나의 미미한 몸짓과 붓질로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자연은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하는 숙명적 대상인 것이다.”라는 말을 통해 작가가 체득한 감각적 시선의 주안점이 무엇인지 가늠케 한다. 자연을 보고 느끼고 감응하며 피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자연뿐만 아니라 작가의 몸에 들어와 걸러지거나 자연과 작가 사이에 또 다른 세계 속 여러 가지 요소들의 역학적 관계가 존재함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정서부터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까지 자연의 일부인 것을 인지하고 바라볼 때, 우리의 신체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을 ‘들숨과 날숨, 호흡 같은 것’이라고 차규선 작가는 정의한다. 그 실현을 위해 자의적인 형식적 틀의 개입을 최소화한 물성의 우연적 효과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 얻어지는 자유로운 몸짓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과 상통하고 싶은 의지를 풍경에 담는다. 그래서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기존의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일상에서 잃어버린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심안의 풍경으로 인도케 하고 있다. 작가에게는 호흡과 같은 일상의 연속을 채집한 표현이지만, 우리에게는 필연과 우연, 행위와 무위의 간극 속에 빚어지는 부산물들이 앞으로 어떤 변화로 작품 속에 녹아 감동으로 이어질지 기대되는 이유일 것이다.

 

전시문의 봉산문화회관 홈페이지 053-66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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