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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프리뷰

[전시] 역사조명 특별기획대구추상, 모험과 실현의 순간들展

by 사각아트웹진 2022.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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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은 매년 여름 동시대 미술이 지역민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특별한 기획전을 마련해 시각예술의 참재미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지금까지 꾸준히 축적해온 기획전시 “기억공작소”, “유리상자-아트스타 공모전시”, “GAP(Glassbox Artist Project)展”, “또 다른 가능성展” 등의 전시 내용을 함축하고 정리하며 우리 회관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는 기획전을 선보였다. 동시대 미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각적 정보와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각기 다른 인식을 상호 연결하는 감각적인 표현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 가중될수록 지역 미술의 근원에 대한 파악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오늘날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다가왔다. 지역과 밀접할 수밖에 없는 구립문화회관의 특성도 그렇지만, 지역 미술의 발전적 고민과 더불어 미래를 설계하고 방향을 잡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성찰하는 것부터가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한 것이, 이번 전시의 추진 배경이다. 비록, 전시 여건의 한계로 지역 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작가 모두 포함하지 못했지만, 대구가 근대미술에서 모던아트로 넘어가는 격동기 중요한 변화 시점을 축약적이나마 담론을 이어가다 보면, 시대적 상황의 큰 맥락의 이해와 작가들의 작품과 생애 속에서 변화에 대응하는 태도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역사적 사료나 근거, 그리고 배경지식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 미술사 연구 분야의 협력을 통해 대구미술사의 변곡점을 되짚어보는 전시이다.

모험의 시작
한국현대미술은 1950년대 말 앵포르멜에서 1970년대 컨템퍼러리운동까지 획기적인 변화를 거듭해 왔다. 한국전쟁으로 입은 피해를 딛고 문화 활동의 재개뿐만 아니라 전후 인간이 갖는 공통적인 감정의 이입, 개방적 자세로 국제적 흐름까지 수용하는 변혁의 시기를 겪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의 간접적이며 수동적인 방식의 미술수용과 도제식의 접근방법이 아닌 작가의 감정이 담긴 표현적 미술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변화의 욕구가 분출했다. 특히, 전후 죽음과 생의 비통함을 대면하며 기성 체제에 대한 불신과 표현의 한계성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고 앵포르멜, 액션페인팅, 초현실주의 등에 관한 이해와 정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이 구축된 결과였다. 이러한 현대미술운동은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화단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었으며 대표적으로 「모던아트협회」와 조선일보사 주최 「현대작가미술전」 등을 들 수 있다.
대구에서는 1940년대 말부터 개성적인 표현양식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자연주의 미술이 주류이던 시기에 정서적인 주제를 특유의 조형언어로 추상적인 해법을 실현한 정점식 작가와 태평양미술학교 유화과를 졸업하고 현대미술의 이론적 토대 위에 구축한 추상미술을 선보인 장석수 작가의 작품을 <chapter 1. 대구 추상미술의 출발>이란 주제로 준비하였다.

chapter 1 정점식,장석수 전시전경

 정점식 작가의 서정적이고 함축적인 추상이 돋보이는 1957년 작품 <모자(母子)>부터 1989년 원숙기에 제작한 <밤의 노래> 등 자유로운 서체적 리듬감의 필적이 절제되고 격조있는 조형요소들로 표현된 작품 7점과 드로잉 2점을 선보이고, 장석수 작가의 비정형적이고 비대상적인 극적 앵포르멜 경향이 담긴 1960년대 작품 <무제>, <작품> 등 6점과 드로잉 2점을 전시하여 격정적이고 우연적인 자유 의식이 돋보이는 대구추상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chapter 2. 추상표현의 다양화> 에서는 서석규 작가와 이복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두 작가의 작품 경향에 보이는 추상과 구상이 혼재된 이미지를 살펴보며 자연주의적인 화풍이 주류이던 1940년대 말부터 시작되는 추상미술 수용이 당시 작가들에게 내면화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파생되는 또 다른 경향인 반추상적인 작품에 대해 알아본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두 작가가 보여준 형태 왜곡과 강렬한 색채는 완벽한 추상주의보다는 조형의 자유로운 변용을 통해 표현적 메시지를 격정적으로 전달하는 구상미술의 변형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런 경향은 당시 추상미술 수용에 있어서 많은 작가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서석규_전시전경


서석규 작가의 강렬함 속에 나타나는 율동적인 붓질로 인물 군집의 형상을 표현한 1960년에서 1970년대 사이 대표 작품 <귀로>, <난무>, <윤희> 등부터 2003년 작품 <백운동의 가을>에 보여주는 감성적 풍경까지 8점이 전시되어 과감한 생략과 과장된 표현 속에 작가만의 감성적인 색조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며, 이복 작가의 두텁게 칠한 거친 물감과 투박한 선으로 형태 변조를 무게감 있고 강렬하게 표현한 1960년대 대표작 <수상(隨想)〉을 비롯한 풍경 시리즈 4점을 선보이며 작가 특유의 자유로운 평면적인 조형의식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실현의 순간들
1950년대 말 서울의 대학을 다닌 박광호, 이동진, 유병수, 이영륭 등과 새로운 예술개념으로 무장한 김구림의 등장은 실험적인 추상화로의 열기를 더욱더 고조시키게 되며 추상미술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chapter 3. 추상표현의 확산>에서 그 의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김구림전시전경
chapter 3 박광호


박광호 작가는 화면의 조형적 분할을 통한 기하학적인 추상적 형태 위에 은유적인 이미지를 배치하여 당시 화단에서는 보기 드문 초현실주의적 경향을 선보인다. 대표작인 1970년대 작품 <알파와 오메가>, <생동>과 1950년대 말 기하학적 추상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콤포지션 G> 등 총 8개 작품을 선보이며 인간의 정신적 내면세계를 탐닉하는 작가만의 독창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포스트모더니즘과 실험미술의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김구림 작가는 대구에서 1959년 첫 번째 개인전과 1964년 《앙그리》 2회전까지 활동하며 당시에도 동시대 미술의 전개와 맥락을 이해하는 실험적 화풍을 선보였다. 파괴를 통해 창조를 보여주는 백색화면 시리즈 1964년작 <작업(work)>, 추상적이고 유기적이며 임의적인 작품 제작 형식 <핵(nucleus)>, 1990년 뉴욕 체류 시 제작했던 생명의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을 보여주는 <음과 양(Yin and Yang)> 시리즈 작품과 영상미디어 등 총 8개 작품을 전시한다.
이동진 작가는 1960년대 《벽전》과 《벽동인전》 창립 동인으로 초대작가들과 연관성을 가지고 이후 1980년대 와서 대구와 인연을 맺는다. 초기 앵포르멜 회화와 실험적인 오브제 중심의 작품을 제작하며 당시 전위적인 현대미술의 경향을 보여줬던 1970년대 <원전> 시리즈와 <자연의 이미지> 등 7작품을 선보이며, 초창기 새로운 재료를 탐구하는 추상의 형식적 태도를 보였던 작가의 작품들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유병수작가


유병수 작가는 질료의 효과를 탐구하고 유기적인 화면분할과 자유분방한 드로잉 속에 본능적 행위를 반영하는 추상을 선보였던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 1960년대 비정형적인 채색화면에 나타난 자유로운 조형성이 발현된 작품 5점과 특유의 선이 붓질로 표현된 1978년 작품 <선의 이미지-78> 와 갈색 톤의 색 번짐을 통한 공간분할을 선보인 작품 1979년 작품 <trace-7906> 2점, 그리고 원숙기로 접어든 1989년 작품 <변용의 이미지>, 2003년 작품 <무제>를 통해 기하학적 파편이 다양한 오브제와 드로잉과 결합한 심화된 추상표현 작품까지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영륭 작가는 1961년 대학교 재학 중에 상공회의소 화랑에 첫 개인전을 펼치며 지역 예술계에 많은 관심을 끌었으며, 《벽전》, 《벽동인》 창립동인으로 활동하고, 일찍이 귀향해 《앙그리》 창립과 이후 《신조회》와 《원로화가회》 창립 등의 활동으로 지역미술계에 많은 영향을 준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 초창기 작업인 1959년 작품 <무제>를 시작으로, 대담한 화면구성과 질료의 중첩으로 현시점에서 봐도 중후한 색채대비로 긴장된 화면과 역동감을 보여주는 1960년대 작품 <정토(淨土)A-103> 외 3점, 그리고 1973년 <生>, 1987년 <인연(因緣)>을 통해 이후 강렬한 청색추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다시 보기
격동의 시대적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대구추상미술 역시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었으며 도전과 실현의 의미가 함축된 실존적 투쟁의 순간으로 오늘날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지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미디어아티스트 오정향 작가을 초대하였다. 인터랙티브, 미디어파사드, 홀로그램 등 다양한 표현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동시대 작가의 시각으로 근현대작가들의 추상미술을 재해석하는 미디어아트와 모든 연령의 관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프로젝션 맵핑으로 움직이는 아카이브를 구현해 실물 아카이브와 함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장이 <chapter 4. 디지털 아카이브> 이다.

오정향


대구추상미술의 출발, 추상표현의 다양화, 추상미술의 확산 그리고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1950년대 말 추상미술 도입기부터 1970년대 또 다른 젊은 세대의 컨템퍼러리 운동 이전까지의 이야기로 구성한다. 추상화의 시대성에 초점을 맞춘 전시로 당시 작품의 경향과 예술적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의 거울을 바라보며 미래를 비춰보는 뜻깊은 전시로 기억되길 기대한다.


chapter 1. 대구 추상미술의  출발_2층 3전시실  정점식, 장석수 / chapter 2. 추상표현의 다양화_3층 2전시실이복, 서석규  
chapter 3. 추상미술의 확산_3층 1전시실   박광호, 김구림, 유병수, 이영륭, 이동진                                               chapter 4. 디지털 아카이브_3층 2전시실오정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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