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갤러리는 2023년 7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완성된 그림이 아닌 ‘그리기’라는 행위에 중점을 두고 작업하는 강원제(b. 1984) 작가와, 사진매체와 한지를 사용해 자연의 공감각적 경험을 담는 다미아노박(b. 1979) 작가의 2인전을 개최한다.
전시명 “Painting Zero”는 일반적인 회화에서 벗어나 완성된 그림이 아닌 행위와 공간 속에서 가능성과 의미를 찾아가는 두 작가의 작업세계를 내포함과 동시에,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암시한다.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회화, 사진, 설치 작업을 선보이며, 갤러리와 이어지는 카페 아트플렉스(Artplex)에서는 이들의 작업과정이 담긴 영상이 송출된다.
강원제(b. 1984)는 대구대학교 학사, 홍익대학교 및 영국 왕립예술대학 석사, 홍익대학교 박사를 마치고 서울에 거주하며 회화, 설치, 영상 등 여러 매체를 활용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며, 그림이 완성되는 지점에서 다시 해체, 변형, 재생산하는 반복을 통해 회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시작과 끝이 반복되고 순환됨을 보여주며, ‘제로 페인팅’은 캔버스 표면 위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간을 무지개, 구름, 꽃, 노을로 은유한다. 볼펜으로 흰 종이를 채워 작업한 ‘블랙 스타’는 완성, 의미, 목적이 그림 속의 텅 빈 별처럼 실체가 없는 허상으로, 결과보다는 과정이 진실에 가까운 실체임을 드러낸다. 완성된 그림의 특정 부분을 선택적으로 오려 새로운 그림을 만들고, 선택되지 않은 잔해들은 천장에 매달에 설치한 ‘선택된, 선택되지 않은’ 시리즈는 선택이 발생한 순간 필연적으로 선택되지 않은 것이 발생하는 현상과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작업 과정은 ‘그림’이 되는 순간을 무너뜨려 그것을 다시 ‘그리기(과정)’ 속으로 포섭하려는 시도들이었으며 결국 그 형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매일 그림 그리기’ 프로젝트인 “Running Painting” 영상은 Artplex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림에는 완성이 없다. 완성을 위해 그림을 시작할지라도 작업 과정 속에서 처음의 의도는 희미해지고,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목적지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기’로 ‘그림’에 도달하려는 시도들은 매번 실패하고 만다. ‘그림’은 마치 신기루처럼 실체가 없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뒤로 물러나며 실체가 되길 유보한다.나는 '그림' 이 아닌 그것을 향해 가는 ‘그리기’ 속에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고정된 ‘그림’ 보다 유동적인 ‘과정’ 속에서의 무한함과 잠재적 가능성이 나를 더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완성은 목적이 아닌 과정을 위한 수단이며 과정 그 자체가 나에게 목적이 된다.” - 강원제 작업노트
다미아노박(b. 1979)은 이탈리아 피렌체 국립 미술원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한 후 2014년 파리로 거주지를 옮겨 사진 매체와 한지를 주재료로 작업하고 있다. 현재 한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오가며 무대미술가, 포토그래퍼,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날로그 작업을 선호하는 작가는 한지 위에 인화액을 바르고, 현무암 등을 얹혀 바닷물에 담그는 등의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자연광을 통해 돌멩이의 자연스러운 형태가 한지 위에 새겨지며, 단순한 바닷속 풍경이 아닌 우주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물에 담그고 씻는 과정을 반복하며 내구성이 높아지는 한지는 작업의 과정에서 더욱 견고해지는 작가 스스로를 대변하면서, 파리와 이탈리아를 오가며 느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매개이기도 하다. 자연의 순환 안에서 소통하고자 하는 그는 바다, 화산, 갯벌, 섬 등의 자연 속에서 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시점을 열어놓고 자연과 교감하며 장소와 환경의 경험성을 찾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시칠리아 에트나 산의 화산재와 제주의 돌을 한지에 시아노타입(청사진)으로 인화한 작품과, 클로드 모네가 그려 유명해진 물의 정원 지베르니의 풍경을 한지에 직접 인화하여 콜라주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우리가 보는 사물이나 형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경험하는 타인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듯이 ’나’라는 소우주를 둘러싼 예상치 못한 숭고하고 아득한 찰나의 순간을 작가 본인의 다양한 감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본질에 접근한다. 사진으로 가둬진 복잡한 이미지들은 투명하고 찢어지기 쉬운 한지에 겹쳐지고 구겨지면서 점점 형상이 흐려지고 사라지며 그 경계선이 허물어지는 작가의 행위로 점점 단순하게 흡수된다. 풍경의 광경이 남긴 모호한 기억, 즉 어떤 공간에 대한 감각, 지속적인 이미지 등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감상적인 조각들을 사진이란 도구를 통해 사실적, 객관적으로 장소를 담아내고, 의식적인 행위를 최대한 배제한 기억의 아카이브를 비정형적인 이미지로 재탄생된다.” - 다미아노박 작업노트
강원제와 다미아노박은 우주 안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순환하는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행위의 순간과 공간 속에서 가능성과 의미를 찾아가고자 한다. 우주의 모든 순간이 작가와 관계성을 이루며 완성되는 이들의 작업은 과정과 결과, 현재와 과거, 끝과 시작 사이에서 무엇으로 규정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전시문의 윤선갤러리 053-766-8278 instagram.com/yoonsun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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